[공감] 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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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딸아이가 다가와 지금부터 질문할 테니 잠시만 집중해 달라고 했다. 가족 모두가 거실 소파에 뒤엉켜 있어도 제각각 휴대폰을 보며 따로 노는 게 일상인지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답하라는 협박이 오히려 반가웠다.

질문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남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는가, 혹은 새로운 일과 만남을 좋아하는가, 질문을 듣고 자신에 해당하는 정도를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대답하시오. 딸은 수십여 개의 질문을 연이어 퍼붓고는 이윽고 그 결과에 탄성을 질렀다.

“우와, 아빤 나하고 비슷해요.”

“뭐가?”

“아빠는 내향적이며 상상력과 감정이 풍부하고 계획적인 사람이에요.”

어리둥절한 내 눈을 보며 딸이 부연 설명 해줬다. 성격 테스트한 거예요. 외향적인 E형이 있고 내향적인 I형이 있어요. I형이라고 해서 사람과 만나는 것조차 싫어하는 건 아니래요. 그렇게 설명하던 딸이 E형과 I형 차이를 내 수준으로 이해할 만한 예를 들어줬다.

친한 친구와 늦도록 술 먹고 놀았을 때, E형은 친구와의 만남 자체로 휴식이 되었지만, I형은 집으로 돌아와 이제 좀 쉬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오호? 나와 비슷한데?

내가 관심을 보이자 딸은 아예 직접 읽어보라며 휴대폰을 건네줬다. 건네주며 요즘 MBTI 모르는 사람 없다. 심지어 입사 면접 때에도 MBTI 유형을 참고하는 세상이며, 소설가가 이런 걸 몰라서 되겠냐며 지청구까지 준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살펴보니 내 유형은 INFJ였다. 통찰력 있는 예언자 어쩌고저쩌고하는 내용을 읽어볼수록 내가 그 유형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그 참 신통하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질문에서 선택했으니, 내가 생각하는 ‘나’와 딱 맞아떨어질 수밖에. 그러니 이 MBTI라는 것은 본인이 의식하고 있는 ‘나’에 관한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진실로 그런 사람일지 아닐지는 별개의 문제다.

사실, ‘나’를 규정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이나 까다로웠으면 철학이라는 영역이 진작 생겼을까. 철학은 결국, 존재와 그 주체인 ‘나’에 관한 근원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주장을 살펴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자아’를 말했고, 후설은 순수의식과 순수자아를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자아, 초자아, 이드라는 세 가지 정신적 영역을 소개했고, 하이데거는 존재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될 뿐이며 인간은 스스로 자기 존재를 기획해서 선택한다고 강조했었다. 이런 말을 들을수록 더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자아와 의식을 따진다면 그 의식이 깃든 몸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의식이 깃든 게 아니라 몸에서 의식이 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몸에 생명이 깃들어 존재 욕망을 얻게 된 건지, 생명이 몸을 갖추게 한 건지 헷갈리는 것과 비슷하다. 몸을 이루는 세포들도 결국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자는 결국 에너지를 품은 파동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떠올리면 ‘나’라는 것이 대체 뭔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다.

이렇듯, 파고들면 들수록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다. 하지만, MBTI 열풍을 보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고 자신의 내면과 본질을 명쾌히 말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만약, 소크라테스가 내 눈앞에 나타나 너 자신을 알고 있냐? 라고 다그친다면 나는 얼떨결에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네에? 저는 인프제(INFJ)라던뎁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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