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테무깡’ 습격, 안전지대는 없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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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쇼핑 앱 알리, 테무 한국 공략
관세 등 면제 ‘무임승차’로 덩치 키워
1400만 회원 확보 토종 플랫폼 위협
쇼핑에 국경 없어… 경쟁력이 해결책

백화점 셔틀버스가 노선버스처럼 시내를 다니며 쇼핑객을 실어나르던 시절이 있었다. 공짜이다 보니 라면, 계란, 우유 등 생필품을 사러 백화점 버스에 오르는 게 1990년대 흔한 풍경이었다. 손님을 빼앗긴 동네 슈퍼마켓과 전통시장은 매출이 급락했고 대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급기야 정부가 법을 개정해 공짜 버스를 금지했다. 2000년대 들어 도심 주거지 주변에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에 골목 가게와 전통시장 상인들이 상권 몰락을 호소하며 들고일어났다. 정부는 또 법을 고쳐 대형마트 일요일 휴무를 법제화했다.

오프라인 손님 쟁탈전에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인터넷 쇼핑몰이 저변을 넓히면서 유통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한 거다. PC에서 모바일 환경으로 전환된 뒤는 앱에 기반한 이커머스가 대세로 떠올랐다.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면 새벽에 문앞까지 신선 식품이 배달되는 세상이다. 이른바 소비의 시공간 변화다. 최근 부산에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폐점이 잇따르고 있는 근본 이유다. 코로나19 시절 익숙해진 비대면 구매 습관이 몸에 붙어 매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되살아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동네 마트까지 사라져 인터넷 주문이 아니면 식품을 구매하기가 힘들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식품 사막화’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이 와중에 더 큰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대형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이른바 ‘알테쉬’(알리, 테무, 쉬인)로 대표되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한국 공략이다. 저가와 무료 배송을 앞세워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잠식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공습’으로까지 묘사된다. 알리와 테무는 공격적인 회원 확보를 통해 단기간에 14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단숨에 국내 2위(알리)와 4위(테무)로 뛰어올랐다. 국내 물류 기지를 계획하고, 대대적인 저가 할인 공세를 펼친다. 벌써부터 국내 온라인 쇼핑몰 폐업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먼저 매를 맞은 미국에선 염가 매장 폐점이 잇따른다. 한국도 쓰나미를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안전지대는 없다.



중국계 쇼핑 앱인 알리(왼쪽)와 테무의 화면. 알리는 ‘K베뉴’라는 한국 메뉴를 신설하고 대기업 제품을 직판 형태로 판매하며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테무는 가입자 유치를 위해 신규 앱 설치 고객에게 쿠폰과 할인권을 뿌리고 있다. 중국계 쇼핑 앱인 알리(왼쪽)와 테무의 화면. 알리는 ‘K베뉴’라는 한국 메뉴를 신설하고 대기업 제품을 직판 형태로 판매하며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테무는 가입자 유치를 위해 신규 앱 설치 고객에게 쿠폰과 할인권을 뿌리고 있다.

■ 소비 시공간의 변화

‘출근길 도시철도 좌석에 앉아 주말에 입을 티셔츠를 결제하고, 근무 중 회사 화장실에서 오전에 다 쓴 자택 화장실 휴지를 주문한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지난해 카드 사용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오전 6~7시 도서 구입이 증가한 점 등을 들어 ‘시간 주권’을 새 소비 트렌드로 규정했다. 오전 이른 시간에 책을 구매하는 경향이 등장한 건 새벽이 소비의 시간으로 ‘발견’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스스로 부여한 소비의 경계 확장이라는 것이다. 잠들기 전 네이버 웹툰을 보기 위해 ‘쿠키’를 결제하는 것도 마찬가지.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모바일 앱을 이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시공간의 변화다. 소비자들이 가성비뿐만 아니라 시성비(시간+가성비)를 추구하는 시대가 됐다.

시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형마트가 일요일 쉬건, 평일 쉬건 상관 없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전통시장은 시성비 시대에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매출이 줄고 폐점이 잇따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인터넷 쇼핑몰이 다 잘나가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가구·가전·식품·의류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 중 7만 8580곳이 폐업 신고를 해 집계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 폐업으로 몰린 가장 큰 이유는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와의 경쟁에서 도태된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를 같이 취급하는데 동일한 제품이 중국계 플랫품에서 훨씬 싼 데다 무료로 배송해 주니 국내 온라인 쇼핑몰이 설 곳이 없어져 버린 탓이다.


미국의 한 뉴스 사이트에서 한국의 다이소에 비견되는 미국 저가 상품 판매점 체인 패밀리달러가 매장 1000곳을 폐쇄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미국의 한 뉴스 사이트에서 한국의 다이소에 비견되는 미국 저가 상품 판매점 체인 패밀리달러가 매장 1000곳을 폐쇄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 ‘테무깡’·‘알리깡’ 전성시대

테무 앱을 깔았더니 바로 ‘앱 신규 고객 전용 26만 원 쿠폰 팩’과 ‘신규 앱 고객 전용 13만 원 할인권’과 함께 관심 상품 리스트가 떴다. 26만 원에 홀려 아무 물건이나 사기 십상이다. 당장 필요 없지만 싼 가격에 현혹돼 물건을 사서 쌓아 놓는다는 의미에서 ‘정크(junk·쓰레기) 커머스’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신났다. 특히 젊은 소비층 사이에 인기다. 요즘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테무깡’, ‘알리깡’이라는 신조어를 곧잘 접하게 된다. 알리와 테무에서 배달된 택배 상자를 뜯는 영상물을 올리고 신규 회원 가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24시간 이내에 다른 고객을 유치하면 추가 파격 할인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테무는 다단계와 유사한 회원 확장 마케팅으로 2월 기준 한국에서만 581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

중국 기업 핀둬둬(PDD)가 2022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한 테무는 미국 유통 시장에서도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2월에 열린 미국 ‘슈퍼볼(미식축구 결승전)’ 30초짜리 중간 광고에 90억여 원을 들일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800달러(우리 돈 107만여 원) 미만은 관세가 없는데, 테무는 이를 활용해 저렴한 생활용품을 중국에서 무료로 배송하는 마케팅 방법으로 미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파죽시세다. 테무의 성장에 저가 할인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의 다이소에 비견되는 미국 저가 상품 판매점 체인 패밀리달러는 매장 1000곳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유통 업계에 곧 닥칠 재앙일지도 모른다.

알리는 국산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국내 배송을 시작해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K베뉴’라는 한국산 판매 코너에 CJ제일제당, 농심, 삼성전자 등이 들어와서 직판 형태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예컨대 CJ제일제당의 햇반(210g·24개)은 정가 4만 4400원에서 56%를 할인한 1만 9536원에 판매 중이다. 국내 최저가 수준이라 국내 플랫폼에 대한 역차별 논란까지 불렀다. 자금력과 회원수를 앞세운 중국계 플랫폼의 파상 공세가 먹히면서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장악력은 한층 커지고 있다. 또 알리 측은 서울 인근에 대형 물류센터를 짓는 것을 포함한 1조 5000억 원 투자 계획을 우리 정부에 제출했다. 국내 유통업계의 지각 변동은 불가피한 상태다.


지난 2023년 3월 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케이팝 스퀘어에 오픈한 ‘알리익스프레스 팝업스토어’에서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3년 3월 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케이팝 스퀘어에 오픈한 ‘알리익스프레스 팝업스토어’에서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 중국 이커머스 격전장된 한국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들에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매력적이다. IT 보급이 잘 되어 있고, 물류 인프라가 뒷받침이 되는 시장이다. 게다가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층이 두텁다. 한국이 중국발 쇼핑 플랫폼 격전장이 된 까닭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중국 내수 시장의 침체, 누적된 재고를 떨어내야 하는 다급한 사정도 주요한 배경이다. 초저가, 무료 배송의 이면에는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되기 위해 지금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이용자를 늘리려는 전략이 있다. 1000원짜리 초저가 상품이라도 중국에서 한국까지 무료 배송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파격 할인과 쿠폰을 뿌리는 마케팅 전략을 고수하는 이유다.

해외 이커머스 앱에서 거래가 발생하면 관세, 통관, 물류비가 붙지 않는데다 전기 제품의 경우 안전·전자파 인증을 받지 않기 때문에 무임승차로 사업을 키운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내 소상공인들은 역차별 피해를 받고 있다고 반발한다. 또 반품 불편이나 짝퉁, 위해 식품과 의약품,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매도 이미 사회 문제가 됐다. 정부가 뒤늦게 외국계 이커머스 플랫폼에 국내와 동일한 처벌 기준을 적용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중국계 이커머스의 성장세를 꺾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중국 이커머스의 파상 공세에 한국 유통업계 어떻게 될까?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앞 상권을 들여다 보면 멀지 않은 미래상을 엿볼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권 조사에 부산 표집 대상은 20곳인데, 이 중 부산대 앞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3년 4분기 27.2%로 상가 넷 중 하나 이상이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평균 7.9%에 비하면 3.5배 가량 폐점한 곳이 많다. 젊은층을 겨냥해 성업했던 옷가게, 잡화류 등 가게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젊은 층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줄었기 때문이고, 알리와 테무의 등장으로 이커머스 쏠림이 심화된 탓이다.


■ 규제 완화, 토종 경쟁력 높이는 게 대책

최근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추세 속에 부산에서도 적용 사례가 나오려 하고 있다. 한데, 한국 인터넷 쇼핑몰과 부산대 앞 상권 침체 사례를 비춰볼 때 의무 휴업일 조정만으로 추세가 반전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예컨대 대형마트가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 기지로 활용해 새벽 배송을 하고 싶어도 밤 사이 영업을 금지하는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족쇄를 차고 경쟁하는 꼴이다.

중국계 플랫폼이 한국 소비자 반응에 대응하는 속도를 보면 두려움마저 생긴다. 알리는 최근 환불·교환에 대한 국내 불만이 일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체제를 도입해 호응을 얻고 있다. 초저가뿐만 아니라 서비스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춰 가고 있는 셈이다. 테무의 모기업 PDD는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데, 자산 가치가 1년 새 50% 가까이 올라 1696억 3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25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런 거대 자본이 작정하고 물량전으로 밀고 들어오면 살아남을 국내 플랫폼이 있을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자칫하면 국내 유통 시장이 글로벌 브랜드에 잠식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계처럼 될 수 있다. 토종 OTT 티빙과 웨이브가 1000억 원대 적자를 내며 고전하는 사이 막대한 자금력과 콘텐츠를 앞세운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는 이제 국산 드라마·영화 제작까지 주도하며 K콘텐츠를 쥐락펴락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유통 시장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이제 쇼핑에 국경은 없다. 초저가 상품을 좋은 서비스로 제공하는 곳에 몰리는 소비자를 탓할 수 없다. 시성비를 추구하는 현명한 소비자들을 붙잡으려면 손님 쟁탈전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껏 한국 시장 안에서 안주하면서 가격·품질·서비스 혁신에 소홀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역차별 해소를 비롯해 일자리 보호나 유통 주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규제 완화 조치를 마련하는 등 정부의 개입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부 대책이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목하 새로운 차원의 소비자 쟁탈전이 시작되고 있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경쟁력이 관건이다. 한국 유통업계의 생존은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때 보장될 것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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