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의 집피지기] 황금알을 낳던 거위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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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부동산팀 기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최근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자조적 표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입지가 좋은 부산의 재개발·재건축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입주권을 따내기 위해 부동산마다 줄을 섰다. 입주 전에 추가 분담금을 조금 내더라도 집값 상승을 통한 이익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원자잿값이 크게 오르고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조합원들에게 갖은 혜택을 주겠다며 구애를 펼치던 시공사들은 태도를 싹 바꿨다. ‘우리도 남는 것 없으니, 시공 계약을 해지하고 싶으면 하라’는 식이다.

서울에서는 억 소리 나는 분담금 폭탄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진구 범천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조합은 기존 평(3.3㎡)당 539만 9000원이던 공사비를 926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문을 시공사로부터 ‘통보’ 받았다. 3년 전과 비교해 72%나 증액된 금액이다. 범천뿐만 아니라 부산 도심의 여러 사업장에서 공사비 인상으로 인한 갈등이 예고된다.

재개발·재건축 조합 입장은 난감하다. 매달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이자를 조합 돈으로 내야 하는데, 시공사와의 줄다리기가 길어질수록 손해는 조합원들에 쌓인다. 공사비 산정 기준을 명확히 밝혀달라는 조합 측 요구도 묵살되기 십상이다.

시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한다면 업체 입찰부터 산적한 단계를 새로 밟아야 한다. 새 시공사와 종전보다 저렴한 공사비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공사비 인상에서 시작된 갈등이 조합의 내홍으로 번지는 경우도 여럿이다. 이런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비화된다면 조합원들은 몇 년간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재건축 패스트트랙 등 각종 규제완화 조치를 발표하고 있지만, 분담금 폭탄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다. 사회적 재난 수준의 물가 인상을 겪고 있는 시공사들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정부는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들의 갈등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이 휘청이면 여파는 조합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이 급감하면 4~5년 뒤 시장에 풀리는 신규 아파트가 줄어들 게 뻔하다. 이는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부동산 시장은 극단적인 사이클을 그리며 요동치게 된다. 하루 아침에도 수천만 원씩 오르내리는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에서 과연 누가 웃을 수 있을까. 몇 년 전 부동산 폭등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될 것이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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