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신애치슨 라인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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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아주 부유한 나라’를 방어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최근 호는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위비를 더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철수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분담금 인상을 노린 것으로 보이지만, 인터뷰의 맥락을 곱씹으면 착잡함이 남는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답변은 단호했다. “우리도 거기 있을 것”이라며 즉각 개입 의지를 밝혔다. 반면, 중국의 대만 침공은 답변 자체를 거부했다. 한국과 대만은 협상용이란 뜻일까? 이 대목에서 한국전쟁을 촉발한 애치슨 라인이 겹친다. 1950년 당시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구 소련과 중국을 봉쇄할 목적으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 채 일본 오키나와와 필리핀을 잇는 방어선을 그은 것이 애치슨 라인이었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신애치슨 라인이 구가됐다. 미중 갈등을 배경으로 미국은 한국과 일본, 대만으로 구성된 ‘칩4 동맹’을 띄웠다. 반도체 경쟁력 덕분에 미국의 ‘반도체 방위선’은 한국 삼성전자·SK와 대만 TSMC를 아우르게끔 그어졌다는 해석이다. 이를 두고 확장된 신애치슨 라인이라는 명명까지 나왔다. 국가의 미래가 초격차 경쟁력에 있기 때문에 산업단지를 짓고 파격적인 지원책을 쏟아부어야 “신애치슨 라인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데, 확장된 신애치슨 라인이란 개념은 어쩌면 김칫국부터 마신 꼴일지도 모른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있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전하는 현지 분위기에서 한국은 존재감이 없다. 미국에서 열리는 주요 반도체 포럼마다 한국이 배제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케네디스쿨에서 열린 한 반도체 심포지엄 사례는 충격적이다. 로니 채터리 전 백악관 반도체조정관이 제시한 글로벌 공급망 지도에 한국과 대만이 없더라는 것. 박 전 장관은 “반도체의 미래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의 SK 반도체 클러스터는 용수난과 전력난에 주민 반대까지 겹쳐 사업 착수 5년인데도 조성 공사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삼성도 마찬가지. 그사이 일본은 한국과 대만이 각각 북한과 중국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논리로 미국과 일본이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설득 중이다. 지난해와 정반대 의미에서 한국과 대만이 배제되는 신애치슨 라인이 부상한다면 막을 수 있을까.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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